[기자의 눈] ‘한인 13세 소년 사망원인 자살’
‘이름:추OO, 나이:13세, 인종:한인, 사망원인:자살.’ LA카운티검시국에 자살자를 조회하는데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. 고작 13살. 삶의 끝을 마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. 무슨 사연일까. 그렇게 힘들었을까. 제한된 공개 자료로는 어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기를 알 수 없었다. 그저 주택가 진입로에서 외상(traumatic injuries)으로 숨졌다는 것만 파악됐다. 이 경우 보통 둔기를 이용하거나 투신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. 추군은 팬데믹이던 작년 11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. 지난해 스스로 삶을 저버린 한인은 36명. 올해(10월 29일까지) 17명보다 2배가 더 많다. 팬데믹 ‘코로나 블루’로 지난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추측이 있었지만 그 예상은 올해 빗나갔다. 미국에서 자살자는 오히려 전년도 보다 적었다. 지난 3일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(CDC)가 공개한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자는 4만5855명으로 전년(2019년)의 4만7511명보다 3% 감소했다. 한인이 포함된 아시안 역시 자살자는 3% 감소했다.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시안은 1303명으로 전년(1342명)보다 감소했다. 그렇다면 한인들의 지난해 높은 자살자 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. 그 답은 인종·연령별로 분류한 CDC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. 전체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던 자살자는 특정 소수민족과 청년 및 60대 이상 고령에서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. 특히 아시안 전 연령 중 35세 미만 젊은 층의 자살자 수가 522명으로 전체(1303명)의 40%를 차지했다. 젊은층 중에서도 10~14세 자살자가 36%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. 또 65~74세 아시안 남성의 자살자는 17%가 증가했고, 75세 이상 아시안 여성은 19%가 증가했다. LA카운티 한인 자살통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. 지난해 60대(7명·20%), 80대(6명·16%) 등 고령의 자살자가 다수를 차지하고, 그 외 50대와 10대(각 5명·14%)가 뒤를 이었다. 한인 젊은층과 고령층 자살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분석 중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내놓는 의견 중 하나는 바로 ‘사회적 인식’이다. LA카운티정신건강국 한 관계자는 “자녀가 우울증이 심해 자해를 했는데 응급실에 와서 단순 사고라고 둘러대는 한인 부모들이 많다. 또 부모들 자신도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숨긴다”라며 “우울증과 불안에 대해 기피하는 행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”고 지적했다. 한국적인 사회문화적 분위기로 인해 한인들은 우울증 등 자살 전조 증상들을 무시하거나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. 하지만 이 ‘신호’를 파악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언젠가 절망적인 결과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. 정신적 질환은 소수에게 불운처럼 찾아오는 나약함이 아니라 감기 같은 몸의 질병처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. 인생의 한 고비에서 켜진 빨간불로 삶 전체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몫이다. 가까운 사람을 살피는 관심과 위로와 희망의 말, 그리고 필요한 지원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일이 낭떠러지에 매달린 한 생명을 건질 수 있다. 누군가 옆에서 힘이 돼주었더라면 13세 소년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.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. 장수아 /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사망원인 한인 한인 사망원인 지난해 자살자 소년 사망원인